복지부·의협, 제17차 의료현안협의체 열어…입장차 뚜렷
“의사인력 확충 막으면 ‘지역 이기주의’ 국민 비판 직면”
정부가 의대 증원 수요조사를 마치고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마주 앉았으나, 의사 인력 확충에 대한 뚜렷한 입장차만 드러냈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인력 부족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전향적 입장 변화를 촉구했지만, 의협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할 경우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했다. 다만 의협은 수가 정상화 등 필수의료 분야 대책이 선결된다면 의대 정원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여지를 남겼다.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제17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고 필수·지역의료 위기 극복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에 관해 논의했다. 복지부와 의협의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는 지난 2일 이후 약 2주 만으로, 새롭게 개편된 의협 측 협상단이 복지부와 처음 만나는 자리기도 하다.
앞서 의협은 지난 9일 예정이었던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취소하고 협상단 구성을 개편했다. 기존 협상단장이었던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이 사퇴하고, 양동호 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의협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복지부가 한 의대 증원 수요조사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는 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양 단장은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면 과학적 근거에 따라 적정 인력을 따져야 하는데, 지금의 수요조사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학과 부속병원, 지역의 정치인과 지자체 모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수요조사 결과는 현실을 왜곡하고 각자의 목적에 따라 변질될 것”이라며 “이번 수요조사는 고양이에게 얼마나 많은 생선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편적이고 편향된 수요조사가 정부에서 주장해온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느냐”며 “만약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할 경우 2020년 이상의 강경 투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2020년 정부가 의대 정원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자 전공의를 포함한 의사들이 총파업과 집단 휴진을 벌여 이를 무산시켰다. 의협은 의사를 확대할 게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필수의료가 기피되는 건 리스크에 비해 돌아오는 보상이 적기 때문”이라며 “저수가를 정상화하고, 의료사고 특례법을 조속히 제정해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에 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필수의료는 당연히 정상화될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는 의협을 향해 인력 부족으로 위기에 처한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며 맞섰다. 그동안 복지부는 지방의료원과 병원단체, 의학교육계 등 의료계 여러 관계자와 간담회를 열고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왔다. 이들은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인력 부족 문제에 공감하며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사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며 “현장과 지역, 의학교육계의 요구를 포퓰리즘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더불어 “(의협이) 국민의 요구를 등한시하고 의사 인력 확충을 막는다면 ‘직역 이기주의’라는 국민의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더 이상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국민과 대학, 필수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의료인력 재배치’라는 현실성 없는 대안으로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의대 정원 확대는 여야 없이 한목소리로 공감하고, 거의 모든 언론과 대다수 국민이 지지하는 정책”이라며 “이런 현실을 언제까지 딴 세상 얘기로 치부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복지부는 의협의 전향적 입장 변화를 촉구했다. 정 정책관은 “정부와 의료계가 합심해 국민들께 우리나라 보건의료 미래 비전을 보여드려야 할 정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국민의 기대와 신뢰가 실망과 불신으로 바뀌지 않도록 의협도 전향적인 변화와 협력의 모습을 보여주시길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와 의협은 이날 의료현안협의체 운영 방향을 재확인하고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지역·필수의료 혁신방안을 도출하는 데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다음 회의에서는 의료계에서 줄곧 요구해왔던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개선하는 논의에 집중할 방침이다.
의협은 이날 회의에서 지역·필수의료 분야로의 의사 인력 유입 방안이 선행되면 의대 정원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고위험·고난도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단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무너져가는 지역·필수의료에 대한 대책을 먼저 얘기하는 게 우선”이라며 “아직은 의대 정원 확대에 관해서는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필수의료 대책이 담보된 다음에 의대 정원에 대한 논의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진행할 것”이라며 “살인적인 저수가를 정상화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부 정책에 따라 의대 증원 규모를 흥정하듯 밝힐 생각은 없다”며 “국민 건강을 위해 부족하다면 늘리고, 많다면 줄여야 하지 않겠느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수집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진행한 의대 증원 수요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데이터”라고 일축했다.
이날 의협이 ‘논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강경하게 반대해오던 입장이 변한 게 아니냐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지만, 의협은 이러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서정성 의협 총무이사는 ‘수가 개선과 법적 부담 완화와 같은 선결 조건이 충족되면 의협도 의대 정원 확대에 동의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의대 정원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현재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등 필수의료 혁신 전략과 관련해 의협뿐만 아니라 병원단체와 환자단체, 의학계, 의학교육계 등을 만나 간담회를 열고 현장 의견을 경청하고, 수요조사를 하고 있다.
이날 오전에는 국내 전문병원 단체인 대한전문병원협회와 간담회를 열고 보건의료 현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병원들은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해달라고 주문하고, 다양한 의료계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현장 의견에 귀 기울여달라는 목소리를 냈다.
김태우 itn@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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