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재 고려대 교수, 학회서 연구내용 발표…1천775자 빼곡히 담겨
佛 국립도서관 소장본 이어 두 번째…현지 학계서도 연구가치 주목

 ▲10월 12일 콜레주 드 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의 광개토왕비 탁본<I T N>

고구려 광개토왕(재위 391∼412)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을 탁본(拓本)한 자료가 프랑스에서 새로 확인됐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이 아닌 서구권에서 광개토왕비 탁본이 확인된 데다 다른 탁본과도 차별화되는 점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23일 학계에 따르면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오는 24일(현지시간) 프랑스 고등학술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새로운 광개토왕비 탁본을 소개한다.

▲1910년대 후반 촬영으로 추정되는 유리건판 광개토왕비 북면 탁본 작업 모습<I T N>

광개토왕비는 414년경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 세워진 비석이다.

아들인 장수왕(413∼491)이 부친의 능을 조성하면서 높이 6.39m에 이르는 비석을 세웠다고 전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비석으로 여겨지며 총 4개 면에 1천775자가 새겨져 있다.

박 교수가 찾은 탁본은 그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아시아학회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다.

1917년 5월 11일 자 학회 회의록에 따르면 이 탁본은 ‘게티 여사가 기증했다’고 돼 있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개토왕비 탁본과 혼동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탁본은 프랑스의 동양학자 에두아르 샤반(1865∼1918)이 수집한 자료로 그간 ‘샤반 본(本)’으로 불리며, 동아시아 이외 지역에 있는 유일한 탁본으로 알려져 왔다.

아시아학회 도서관 측은 최근에야 또 다른 탁본 존재를 인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는 “도서관에서도 지난해 말 학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며 “올해 9월 이런 내용을 인지해 실측 조사,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에 따르면 광개토왕비 탁본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 현재 여러 탁본과 이번에 새로 확인한 탁본(두 번째) 제1면 일부 비교<I T N>

가로 37∼38㎝, 세로 63∼67㎝의 종이를 여러 장 이어 붙여 비석 면에 새긴 글자를 찍어냈으며, 총 4면 가운데 3번째 면을 제외한 1면, 2면(중복), 4면이 확인됐다.

탁본은 비석 면에 석회를 발라 균열이 있는 곳이나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일부 조정한 후에 찍어내는 방식의 석회 탁본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전하는 광개토왕비 탁본 자료 100여 종 가운데 약 80%가 석회 탁본으로 알려져 있다.

박 교수는 “제3면이 빠지고 제2면이 중복된 이유는 알 수 없다”면서 “다만 중복된 2장은 접지방식과 먹색이 동일한 점을 고려하면 동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사에 참여한 복원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종이 재질은 중국의 선지(宣紙), 일본의 화지(和紙)와 다른 제3의 종이로 추정된다고 한다”며 한지일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이 탁본이 1907년 입수한 ‘샤반 본(本)’보다는 늦은 시기에 제작됐으리라 봤다.

그는 “기증자는 아시아 불교 미술을 연구한 앨리스 게티(1865∼1946)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1908∼1913년에 자료 조사를 위해 아시아 지역을 3차례 답사한 바 있고, 그때 탁본을 수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진 (광개토왕비) 탁본 가운데 유일하게 같은 시기에 제작된 복본(複本)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가치를 지닌 자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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