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지, 축대 흔적, 암막새·자기 등 출토
태일전(太一殿)은 태일(太一)의 제사 즉 국조(國祖)인 단군(檀君)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조선시대 임금이 도교제사를 지내던 ‘태일전’ 흔적이 충남 태안 백화산에서 발견됐다.
태안군은 지난 10월부터 진행한 백화산성 정비사업부지 발굴 조사 결과 태일전 건물지 3곳과 축대 흔적이 발견되고, 용문 암막새 등 다량의 기와와 자기가 출토됐다고 11일 밝혔다.
약 750㎡의 면적에 대해 이뤄진 발굴조사는 경북 의성에 있던 태일전이 1478∼1479년 태안으로 옮겨졌다는 조선왕조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 등 기록을 근거로 그 흔적을 찾고자 진행됐다.
1호 건물지의 기단(건물을 짓기 위해 흙이나 돌을 쌓고 다져서 만든 터)은 동서의 길이 17.5m, 남북의 길이 15m의 방형에 가까운 평면형태를 보인다. 기단 석렬(경계 설정 등을 위해 줄지어 쌓은 돌)은 4면에 모두 1단 정도가 남아 있다.
이 중 동쪽과 남쪽의 기단석은 다듬어진 대형 장대석으로 확인되며, 기단 전면과 서쪽에는 계단시설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아있다. 초석(건물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기둥 밑에 고이는 돌)은 대부분 원형이며, 주좌면의 직경은 46∼70㎝이다.
1호 건물지에서는 초석 21개와 적심(초석을 받치는 건물 기초시설) 1개가 확인됐으나, 건물 규모는 후대의 교란으로 인한 초석 멸실 및 이동으로 명확하지 않다.
2호 건물지는 1호 건물지 기단 정면에서 서쪽으로 40∼60㎝ 떨어져 있다. 기단 규모는 동서 길이 520㎝, 남북 잔존 길이 460㎝다. 기단 석렬은 할석(깬 돌)을 이용해 축조했고, 교란으로 일부 사라져 1단만 남아있다.
3호 건물지는 1호 건물지 기단 정면에서 남쪽으로 700㎝가량 떨어져 있다. 계단시설과 일자로 이어지는 배치 양상을 보인다. 군은 이 건물의 문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도 찾았으나 담장지 등 부속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아 현재로선 단언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축대는 1호 건물지 기단 후면에서 210∼230㎝ 떨어져 동서 방향으로 이어진다. 확인된 규모는 길이 1천810㎝, 최대 잔존높이 136㎝다. 축대 서쪽 구간은 자연암반을 적극 활용해 축석한 반면 동쪽 구간은 다듬어진 석재를 이용했다.
군 관계자는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시설과 원형 초석, 축대 등 상당한 위용을 갖춘 건물지와 관련 시설이 확인되고 출토 기와 중 용문 암막새 등이 포함됨에 따라 태안 태일전이 왕실과 관련된 권위 있는 건물이었음을 뒷받침해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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