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폭언 들은 뒤 극단 선택
부모 “업무상 재해 인정해야” 소송
法 “해고 두려움, 우울증 악화시켜”
공단 항소하지 않아 승소 확정 돼
정식 채용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 자신의 자녀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낸 부모가 승소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정희)는 A씨 부부가 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지난해 11월 원고 승소 판결을 냈다.
앞서 A씨 부부의 자녀 B씨는 2020년 한 홍보대행 회사에 입사해 근무하던 중 그 해 10월 회사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법원에 따르면 B씨는 사망 전날 자신의 상사에게 “낯빛이 좋지 않다” “정신질환이 있냐”는 등 반복적으로 질책을 받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A씨 부부는 “자녀의 사망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B씨가 업무상 사유로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거부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 부부는 행정소송을 제기, 재판에 앞서 “회사의 대표가 자녀에게 심한 질책과 폭언을 해 (자녀가) 정식 채용을 앞두고 해고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며 “이로 인해 자녀의 우울증이 급격히 악화됐고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B씨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과 주치의 소견 등 증거를 바탕으로 법원은 A씨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 B씨는 그간 우울증으로 인해 수차례 관련 처방을 받았는데, 직장 상사의 폭언이 이를 악화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B씨는 2017년부터 2020년 마지막 회사에 입사할 때까지 여러 차례 이직을 경험했고, 이 사건 회사에도 3개월의 수습기간 후 채용을 조건으로 입사했다”며 “그로 인해 B씨는 이번에도 3개월 후 해고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상당히 느끼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 상황에서 B씨는 대표로부터 여러 차례 질책을 들었고, 사망하기 전날에는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폭언을 들어 극심한 수치심과 좌절감 등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스트레스가 B씨의 우울증세를 크게 악화시켰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한 “감정의는 ‘B씨가 경험한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는 업무상의 스트레스 외에도 대인관계에서의 스트레스 또한 스트레스 인자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제시했다”며 “이는 업무상 스트레스가 (B씨의) 극단적 선택을 초래한 하나의 원인임을 인정한 것이고, 이러한 의학적 견해를 뒤집을 뚜렷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공단 측이 항소하지 않아 A씨 부부의 승소는 지난해 12월 확정됐다. B씨가 사망한 이후 약 3년2개월만이다.
한편 B씨는 생전 자신의 일기에 “대표님의 말들이 자꾸 생각이 난다. 복기할 수록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다”라며 “나도 일 잘하고 싶고, 안 혼나고 싶다”라는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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