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두 교황’ 30일 개막…동명 영화로 유명
서인석, 12년만에 연극, “절충·융합하는 교본”
남명렬 “옳고 그름 아닌 다름…변혁과 화합”
“연극은 영화와 다를 겁니다. 또다른 감동이 있어요.”(서인석)
“신계가 아니라, 인간계로 내려온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곳곳에 있는 교황의 유머도 직접 확인해보세요.”(남명렬)
바티칸의 역사를 뒤흔든 ‘두 교황’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른다. 2013년, 바티칸 역사상 598년 만에 자진 퇴위를 발표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현직 교황 프란치스코의 실화가 바탕이다.
넷플릭스 영화로 공개돼 호평받은 이 작품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극작가 앤서니 매카튼의 희곡이 원작이다. 영화보다 먼저 2019년에 영국에서 연극으로 초연됐고,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으로 국내에 상륙했다. 오는 30일 개막을 앞두고 두 교황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 서인석(73)과 남명렬(63)을 17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추기경 은퇴를 고민하던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교황)가 교황 베네딕토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다른 인물도 있지만, 사실상 2인극에 가깝다. “대사가 어마어마하다”며 “일찍부터 대본을 분석하고 암기하며 연습에 돌입했다”고 두 배우는 입을 모았다. 개막이 십여 일 남은 현재도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다.
“영화는 영화”라며 연극은 그와 다를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연극은 다른 형식의 표현이 필요해요. 영화에선 조근조근 대화하는 듯 보이는데, 사실 그 속에 매우 큰 격정이 있죠. 서로 다른 신념이 부딪치고, 자기 고백을 해요. 연극은 격정적인 모습이 더 많이 표현될 거예요.”(남명렬)
실존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부담도 됐지만, 이들만의 캐릭터를 차곡차곡 완성해왔다. “그래서 분석하고, 연습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실존 인물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배우는 꼭두각시처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대본과 주제에 맞게 나만의 인물을 창조하고 조화를 이루는 거죠. 진짜 베네딕토로, 프란치스코로 바라보게 해야 성공이죠.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모든 건 배우 책임이고, 공감을 얻는 창조적인 예술로 소화해야죠.”(서인석)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방향을 고수하면서도 수준급 피아노 실력에 따뜻한 성품을 지닌 교황 베네딕토 16세역에 서인석, 남명렬은 개혁을 지지하며 진보적 신념을 갖고 축구와 탱고를 즐기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연기한다. 실제 9살 차인 두 교황처럼 두 배우도 10살 차이가 난다.
베네딕토 교황이 프란치스코에게 하는 첫 대사는 ‘당신의 행동, 말, 생각, 단 한 가지도 동의할 수 없다’다. 서로 다른 성향으로 충돌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해하며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해간다. “성향 차이가 연극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두 인물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남명렬은 말했다.
“신의 대리인이라는 교황도 사실 인간이잖아요. 고뇌와 번민 속에 있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죠. 자기 과오를 인정하고 변화를 수용하는 건 쉽지 않아요. 베네딕토는 여러 사건 속에 이를 해결하기엔 자신의 쓰임새가 다했다고 판단한 거죠. 시대 변화에 따라 스스로를 고백하며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를 이어받는 그 용기가 대단해요.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다름인 거죠. 변혁이 없다면 화합이 이뤄질 수 없고,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죠.”
서인석도 “종교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두 교황의 모습은 인간관계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대립된 감정이나 갈등일 수 있다. 어느 지점에서 공통점과 연민을 찾고 절충하며 융합하는 모습은 우리 삶의 교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신구, 서상원, 정동환이 함께 출연하는 이 작품에서 서인석과 남명렬이 짝이다. 두 배우가 함께 작품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드라마 ‘무인 시대’, ‘태조왕건’ 등 중후한 연기를 펼쳐온 서인석은 1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모체가 연극”이라는 그는 1970~80년대 극단 ‘실험극장’에서 활동했고, 당시 공연한 2인극 ‘아일랜드’는 큰 화제를 모았다. 이를 연출한 윤호진이 ‘두 교황’ 제작사 에이콤의 예술감독이다.
서인석은 “윤 감독과 하는 일곱 번째 작품이다. 함께 술을 마시며, 정극으로 날 끌어들였던 만큼 마무리를 해야하지 않겠냐고 했다”고 웃으며 “남명렬 배우는 올해 이해랑연극상도 받았고, 그 명성을 알고 있었다. 제가 선배지만, 연극을 꾸준히 하진 못했기에 걱정도 됐다. 하나하나 맞춰가며 함께 대사와 연기의 절정을 찾아냈고, 이젠 눈빛만 봐도 안다”고 말했다.
남명렬도 “선생님을 처음 뵙고 연습해보니 ‘명불허전’이라는 게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 영역은 달랐지만, 세월의 경력과 그곳에서 오랫동안 큰 그릇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고 밝게 웃었다.
‘두 교황’을 비롯해 최근 폐막한 연극 ‘햄릿’, 오는 10월 개막하는 박정자와 오영수의 연극 ‘러브레터’ 등 원로 배우들의 활약이 주목받고 있다. “유행”이라고 공감하면서도 두 배우는 이를 반가워했다.
“과거엔 나이 든 배우를 캐스팅하는 걸 두려워했어요. 젊은 배우들이 나이 든 역도 소화했는데, 아무리 잘해도 그 세월의 깊이를 이길 순 없죠. 유독 한국 배우들이 일찍 포기하게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업계도 커지고, 다양한 연령대에 기회가 주어지며 농익은 연기를 보는 재미에 대한 인식도 관객들 사이에 생겨났죠. 이젠 노련한 배우들의 체력적인 힘도 충분해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레 전망해봐요. 꽤 긴 시간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이 있죠.”(남명렬)
“후배들이 활약하며 문화환경이 많이 발전했는데, 그 바탕이 된 선배 세대를 궁금해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 시즌의 유행인 거죠. 지난해 ‘더 파더’의 앤서니 홉킨스나 윤여정 배우의 오스카상 수상도 결이 비슷하죠. 나이 든 배우들이 일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기뻐요. 반면 배우는 또 떠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서인석)
조재성 기자 unicho114@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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