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기업이 개발한 순환기계통 신약, 동일 계열의 제네릭 보다 4.5% 낮은 가격에 책정
제약바이오 산업을 국가핵심전략산업으로 육성시키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월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방안을 발표해, 바이오헬스 산업을 국가핵심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연구개발 지원, 투자 확대, 인력 양성, 규제 혁신 등 다방면에 걸친 실행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산업계가 요구했던 ‘합리적 약가 책정’ 혹은 ‘의약품에 대한 합리적 가치 보상’에 대한 대목은 빠져있어 현장의 요구와 간극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산 신약에 대한 낮은 보험약가 책정이 신약 개발의 동기를 꺾어버린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A제약사는 해외에서 국내의 낮은 약값을 참조해 가격을 책정하는 바람에 자체 개발한 신약 수출이 무산됐다. B사는 한국 시장을 외면하고 해외에서 먼저 신약을 출시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신약은 대부분 베스트 인 클래스(동일 계열 내 효과가 가장 좋은 약)에 속한다. 이 경우 시장에 출시된 제네릭을 포함한 모든 대체약제 가중 평균가의 90%에서 보험약가가 결정된다.
문제는 정부가 국산 신약의 가격을 산정할 때 참조하는 ‘대체약제군’에 이미 약값이 대폭 떨어져 있는 제네릭(복제약)까지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결국 신약임에도 당초 오리지널 의약품의 평균 45% 수준에서 약값이 결정되는 불합리함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제약기업이 개발한 순환기계통 신약은 동일 계열의 제네릭 보다 4.5% 낮은 가격에 책정됐다. 평균 500억원 이상의 개발비가 투입되는 신약의 가치가 훨씬 적은 비용이 들어가는 제네릭보다 낮게 책정된 것이다.
업계는 정부의 미온적인 국산 신약 약가 우대의 저변에 미국이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제약사들은 지난 2016년 7월 한국 정부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7.7 약가우대제도)에 반발했다.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거나,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수행하거나, 혁신형 제약기업에 최대 10% 약가를 우대하는 내용이 골자인데 “한미 FTA 의무를 어기고 미국 제약사의 권리를 짓밟는다”고 비판했다. 국산 신약에 대한 7.7 약가 우대는 사문화됐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이유로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 및 보호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약가규제 완화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며 “신약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 기조와 동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공급망 교란 문제에 직면한 미국은 동맹국에 큰 부담을 주면서까지 자국 산업 육성에 나섰다.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 지원금으로 시끄러운 인플레감축법을 시작으로, 자국 내 의약품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행정명령까지 보호무역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 일본은 신약이 ▲새 작용기전인 경우 ▲동일 계열의 비교약에 비해 높은 유효성·안전성을 입증한 경우 ▲해당 질환 또는 외상의 치료 개선을 입증하면 ‘혁신신약 약가 가산’ 명목으로 선진 7개국 평균약가의 70~120%를 보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이 자국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의 고삐를 죄는 동안 한국에선 국산 신약에 대한 약가우대 방안이 실종됐다”며 “기업들의 약가 우대 요청에 여전히 정부는 통상 문제를 언급하며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방침이다”고 지적했다.
산업계는 정부가 진행 중인 ‘국제 통상질서에 부합하는 혁신형 제약기업의 약가지원 정책 연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연구용역은 지난 5월 연구결과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막바지 수정작업을 거쳐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소위 힘 있는 나라가 주도하는 자국 우선주의는 당분간 다자주의를 대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복두 itn@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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