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저성장·집값 버블 등 일본과 유사한점 많아”
“전세계적 현상, 홀로 폭락했던 일본 상황과는 달라”
“집값 정체기 거친 뒤 내년 상반기부터 하락폭 축소”
국내 부동산 시장이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 이후 침체기로 접어들고 있다. 부동산 버블 형성 과정이나 생산가능인구 감소, 인구고령화 등 일본과 유사한 면이 많은 한국이 버블 붕괴 이후 장기불황에 빠진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일본만 나홀로 불황에 빠진 1980년대 말과는 달리 지금은 미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이 유동성 회수에 돌입하면서 나타난 전세계적 가격 조정이라 일본식 장기불황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부동산 가격은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약 5년 동안 2~3배 급등한 후 1991년 가을부터 20년 넘게 장기 하락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이 나왔다.
일본 부동산 시장의 버블은 1985년 플라자 합의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1985년 막대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일본에 강요한 ‘플라자 합의’에 따라 일본은 1984년 말 1달러당 251엔에서 1987년 말 122엔으로 급격하게 엔화 가치를 높였다. 이러한 엔고는 수출주도형 성장을 하고 있던 일본 경제에 큰 충격을 줬다.
엔화의 급격한 절상으로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일본의 전반적인 경기가 악화됐고, 이에 대응해 일본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인하와 내수확대 정책에 돌입했다.
1986년 1월 5%였던 정책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 일본은행은 같은 해 11월 3%로 11개월 동안 무려 2%포인트를 떨어뜨렸다. 다음해엔 2.5%까지 낮춘 뒤 1988년 말까지 2.5% 수준을 유지했다.
‘불황’을 막기 위한 경기 부양용 저금리 정책이었지만 일본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우리나라의 2019년과 비슷한 셈이다.
그러던 일본은 1989년부터 정책금리를 급속도로 올리기 시작했다. 일본은행은 부동산가격이 이미 큰 폭으로 상승한 1988년 말까지도 2.5% 수준의 낮은 금리를 유지하다 1989년 들어 부동산시장 버블 우려가 점차 높아지자 기준금리를 뒤늦게 큰 폭으로 인상하기 시작했다.
1989년 5월 2.50%에서 3.25%로 0.75% 인상했으며 1990년 3월에는 4.25%에서 5.25%로 1%포인트 인상했다. 1990년 8월에는 5.25%에서 6.00%로 다시 0.75%포인트 인상했다. 이런 일본은행의 급격한 금리인상은 부동산 시장에 큰 충격을 줘 1991년 초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도쿄 맨션아파트 가격은 70㎡ 기준으로 1990년 1억760만엔에서 1994년 5800만엔으로 떨어졌다. 이후에도 장기 불황기에 들어서면서 2001년에는 4700만엔까지 하락했다.
기준금리는 일본 부동산 버블 형성과 붕괴에 많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우리나라가 지난해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침체기로 접어든 것과 유사하다.
또한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고, ‘단카이'(전쟁 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부동산 시장 침체가 가속화된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생산가능인구 감소, 저출산 고령화 등 급속한 인구구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도 부동산 시장의 잠재적 불안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이처럼 일본의 가계 부채의 급증세와 부동산 가격 버블 현상 심화 현상, 인구 구조적인 현상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우리나라 역시 자산 가격 거품이 걷히고 나면 일본식 장기 경제침체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자산관리연구원 고종완 원장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인구 고령화가 시작된 점과 경제 성장 탄력이 떨어진 점, 집값이 많이 올랐다가 버블이 꺼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일본식 모델을 따라가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며 “실물경제와 부동산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데 지금처럼 물가가 높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일본식의 부동산 장기 불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으로 가지 않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라며 “외화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있고, 한계기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정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과도한 부채를 줄여나가는 것은 다시 경제가 회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의 과거 장기 불황이 전세계에서 특수한 사례였던데 비해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송인호 소장은 “낮은 금리가 지속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은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과거 일본 부동산이 나홀로 폭락했던 당시처럼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미국 금리인상에 의한 대외 환경 변화와 이에 따른 전세계적 부동산 가격 하락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소장은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내년 상반기까지 최대 1%포인트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따라 부동산 가격은 당분간 정체기를 거친 뒤 내년 상반기부터는 하락폭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우리나라는 일본 버블 붕괴 당시와 달리 현재 주택 시장에서의 과도한 위험추구 행위를 제어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 점도 큰 차이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버블 당시 부동산 가격의 담보를 100%까지 인정하는 사례가 확대됐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LTV·DTI 규제를 통해 일본과 같은 담보가치 인정 융자가 확대되는 극단적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WM 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은 “인구구조적인 문제나 가파른 금리인상, 부동산에 대한 심리적인 측면들은 당시 일본의 상황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일본과 같은 폭락 상황을 예상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나라는 부동산 담보 대출에 대한 제한이 지금의 가격 하락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가장 큰 차이가 버팀목 역할을 위해 여러가지 제도가 설계됐다는 점이어서 일본처럼 연쇄적인 부도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성 기자 unicho114@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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