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간’ 펴내…”고통 끌어내 치유하는 마지막 보루”
요즘 ‘문학청년'(문청)이란 말은 유물급 표현이 됐다. 과거 ‘문청’이라 하면 호감도를 높였지만, 이젠 고리타분한 아웃사이더쯤으로 여겨진다. 언어는 시대의 반영이니, ‘문청’의 스러짐은 축소된 문학 지형과 발맞춘 듯하다.
대학에서 문학 계열이 비인기 학과가 되고, 문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지도 20년이 더 됐다.
문학은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고 독자가 줄었을지언정 작품은 읽힌다. 지난해에도 김훈의 ‘하얼빈’과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의 소설이 널리 공감을 얻었다.
“문학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시선에도 읽고 썼던 정여울(47) 작가가 ‘문학은 여전히 왜 필요한가’란 물음을 깊이 탐색했다. 최근 펴낸 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간'(한겨레출판)에서다.
정 작가는 최근 한 언론사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한때는 자부심을 느꼈던 문학청년이 사라져 가는 시대, 학위를 취득해도 취직이 어려워 문학을 공부하는 학과가 줄어드는 대학의 위기가 문학의 위기와 겹쳐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문학을 창작하려는 사람은 어느 때보다 많아졌는데, 읽는 사람은 줄어든 게 기현상”이라며 “문학 작품은 덜 자극적이고, 영상 매체와 달리 힘을 들여 읽어야 하니 접근성이 낮다. 그러나 모든 예술 장르와 비교해 오직 문학만으로 얻는 게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그는 동서양 고전, 현대문학, 영화와 음악 등 세상 이야기에서 포착한 ‘문학적인 순간’의 경험을 나눈다.
“문학 작품은 독자가 읽음으로써 상상, 공감을 통해 독자적인 세계가 탄생한다는 매력이 있어요. ‘제인 에어’를 영화로 볼 때와 달리 100만 명이 읽으면 각자 머릿속에 그리는 제인 에어가 태어나죠. 문장으로 쓰일 때 더 큰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문학의 영역이에요.”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외로운 문제아 홀든을 보며 “믿어주는 한 사람”의 소중함을, ‘가든파티’에선 조용한 배려의 아름다움을, ‘바리데기’에선 사랑받지 못한 자의 원한 없는 사랑을 일깨운다. 권여선의 단편 ‘손톱’에선 가만히 곁에 있어 주는 문학의 힘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문학의 힘을 굳건하게 믿는다. 그 역시 텍스트 속 타자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바닥이던 자존감을 끌어올렸고, 극단의 대립을 메우는 매개의 의미를 터득했다. 사회적 가면에 지치거나 힘들 때 되뇐 문장도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구절이다.
그는 “내가 간직한 책 속에 친한 친구가 있는 느낌은 정말 든든했다”며 “이런 ‘내적 자산’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문학 작품을 많이 읽을수록 이야기, 감성 재벌이 된 느낌이었다. 성취감과는 다른 행복감이었다”고 떠올렸다.
정 작가는 무엇보다 문학은 잃어버린 것을, 약한 존재를,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내고 상처를 부둥켜안는 “마지막 보루”라고 여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현재의 행복을 망각한 인간의 탐욕을 고발하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구조화된 불평등에” 맞선 것처럼.
그는 “‘난쏘공’처럼 세상에 표현되지 못한 고통을 밖으로 끌어내고, 그 고통을 가장 공감할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며 “그런 점에서 읽고 쓰는 이야기 전달자, 작가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 작가는 “문학은 죽은 게 아니라 영역이 분산하며 모습을 바꾼 것”이라고 짚었다.
“모든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스크립트를 쓰는 사람들도 문학을 베이스로 한 작가들이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감동적인 콘텐츠 중엔 원작이 소설인 게 많고요. 여전히 문학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죠.”
문학의 수명이 오래 가려면 영화, 연극 등 다른 장르와의 융합·소통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선 결국 독자의 힘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독자의 막강한 힘은 (작가의) 재능을 알아보는 재능”이라며 “독자가 읽어주면 다른 장르로 태어나고 텍스트의 수명은 더 길게 갈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정여울은 문학, 여행, 심리학, 예술 관련 에세이를 쓰며 문학 평론가로 활동했다.
문학과 세상 사이의 메신저로 사는 그는 “문학을 추앙한다”고 웃으며 “어디를 바라봐도 문학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고 돌아봤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데미안’을 읽고서 헤세에게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반짝이는 등대를 발견한 느낌’이란 편지를 보냈는데, 저도 문학 안에서 마음의 등대가 켜진 느낌이었죠. 시대가 어둡고 힘들수록 기댈 곳이 없어질수록 진정으로 마음을 기대도 괜찮은 곳, 그곳이 문학이 있는 자리이고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김복두 itn@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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