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 덕에 자리잡아…되돌려 드려야” 7년간 ‘치킨 쿠폰’ 1천매 발행
제주 서귀포시 동홍동에 사는 저소득층 가정 아동은 생일을 맞은 달이면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하얀 봉투를 설레는 맘으로 열어보면, 빳빳하게 코팅된 쿠폰이 한 장 나온다. 바로 굽네치킨 제주동홍점을 운영하는 곽재인(52)씨가 후원하는 ‘사랑나눔쿠폰’이다.
곽씨가 운영하는 가맹점에 전화해 ‘사랑나눔쿠폰 쓸게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곽씨가 맛깔나게 구운 뜨끈뜨끈한 치킨 한 마리가 금세 집 앞까지 달려온다.
2016년부터 시작된 사랑나눔쿠폰 발행은 7년간 매달 거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휴일을 맞은 곽씨를 지난 3일 제주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의 어머니는 배추 리어카 장사를 하며 억척같이 삼 남매를 키웠다. 어머니 홀로 생계를 책임졌던 탓에 장남이었던 그는 일찌감치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중학생 시절 신문 배달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는 볼링핀을 세우는 일명 ‘핀 보이’, 레스토랑 홀 서빙과 주방 아르바이트까지 그 나이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서울로 상경해 건설업 일용직과 방수제 제조 공장 근로자로 일했다. 지인과 동업으로 한때 기관 홈페이지 구축 작업을 하는 벤처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IT(정보기술) 버블이 터지며 결국 망했다.
10년 넘게 타지에서 고군분투했지만, 반지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어머니가 “같이 살자”며 걸어온 전화 한 통에 다시 제주로 터를 옮겼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몇 년간 하루 먹고 사는 생활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 서울에 있는 해외 유명 버거 프랜차이즈 회사에 근무하던 첫째 여동생이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구운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개업을 추천했다.
무일푼이던 그에게 가맹점 개업은 언감생심이었다. 또다시 주저앉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컸다.
그는 “없는 형편에도 나를 위해 첫째 여동생이 1천만원이 넘는 오븐을 할부로 사줬다. 막내 여동생은 적금을 깨서 모자란 점포 임대료를 채워줬다”며 “6개월 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나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쉬는 날 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죽기 살기로 일한 끝에 개업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다행히 가게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그는 다달이 동생들에게 빌린 돈도 나눠 갚을 수 있었다.
그는 “카드 결제일인 5일이 다가와도 심장이 벌렁거리지 않고, 딸과 아들을 학교에 학원까지 보내고, 가족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사줄 수 있는 행복을 알게 됐다”며 “그리고 문득 이러한 행복이 내가 구운 치킨을 사랑해준 지역주민 덕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지역주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결심을 한 그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처음 무작정 어려운 가정에 치킨을 배달했다. 하지만 투박한 방식 탓에 오해가 생겼다.
그는 “불시에 배달을 가는 바람에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사람이 있더라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부담을 갖거나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 받는 상대는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 푸드트럭을 몰아 치킨 100마리를 무료 나눔 하는 등의 방식으로 나눔을 이어갔다. 그러다 ‘사랑나눔쿠폰’을 생각해 냈다.
그는 “지역주민께 받은 사랑을 더 자주 나누고 싶었다”며 “사실 매달 치킨 20마리 후원은 나에겐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정도”라며 “오히려 치킨 배달왔다는 소리에 한달음에 달려 나와 치킨을 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또다시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매달 생일을 맞은 지역 내 어려운 가정 아동에게 쿠폰을 보내는 역할은 동홍동지역사회보장협의회가 맡고 있다. 그가 7년간 발행해 전달한 쿠폰은 벌써 약 1천장이나 됐다.
그는 “수입이 적어 가게를 개업하기 전에는 제대로 된 세금을 내본 적이 없다”며 “가장으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게 해준 지역주민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또한 “나눔은 나의 만족이기도 하다. 진정 기쁜 마음에 나눔을 실천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며 “누구나 일생을 마치는 날 ‘나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한 마디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용구 itn@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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