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 역… “악에 무릎 꿇지 말자는 생각 들었죠”
이성민과 연기 호흡… “역할에 빠져들게 하는 에너지 줬다”

▲배우 조진웅<I T N>

116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 ‘대외비’ 속 전해웅(조진웅 분)은 쉴 새 없이 변화한다. 극 초반 그는 정치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희망이 가득한 모습이다. 그러나 수많은 감정의 진폭을 겪고 텅 비어버린 그의 눈동자에는 권력에 대한 야욕만이 들어차 있다.

23일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해웅을 연기한 배우 조진웅은 “인물이 상황을 끌고 가는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며 “처한 상황이 격변하는 게 훨씬 재밌고, 이번 시나리오도 그런 부분에 끌렸다”고 말했다.

‘대외비’는 1992년 부산, 만년 국회의원 후보였던 해웅이 하루아침에 공천 무산 통보를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문도 모른 채 부산 정치판의 실세 순태(이성민)의 눈 밖에 난 해웅은 혼자 힘으로 ‘금배지’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대외비’<I T N>

조진웅은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듯이 뒤로 갈 데가 없었다. 죽더라도 (순태에게) 상처는 내겠다는 근성으로 버틴 것”이라며 “어차피 낭떠러지에 있는 사람이라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지점이 저랑 비슷하다”고 했다.

“제가 뭘 하겠어요. 나이도 있고, 취직할 수도 없고. 갈 데가 없죠. 저는 작업할 때 항상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야지. 그냥 한 번 죽자’라는 생각을 해요. 작품을 한다는 건 외줄을 어떻게 재밌게 타느냐인데, 방심하거나 삐끗하면 떨어지잖아요. 그때 후회하고 울고불고 해봐야 소용없어요.”

극의 중심에 해웅과 순태의 갈등이 놓여있는 만큼 두 사람이 마주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특히 극 후반부 테이블 하나를 앞에 두고 사람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국밥집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는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해당 장면에서 해웅의 얼굴에는 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일각에서는 ‘조진웅은 땀까지 연기해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영화 ‘대외비’<I T N>

조진웅은 “긴장감을 무조건 끌어내야 하는 장면이었다”며 “움직임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기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에너지가 잘 잡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가 여름이기도 했어요. 몰입하니까 (얼굴이) 벌게지고 열이 막 오르더라고요. 때마침 딱 땀이 흘러내려 줬어요. 잘 얻어걸린 거죠. 뭐. (웃음)”

그는 “전해웅이란 캐릭터가 보시기엔 처절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굉장히 신나게 연기했다”면서 그럴 수 있었던 데는 선배 배우인 이성민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성민이 형이랑 ‘열혈 장사꾼’이라고 하는 드라마에서 조연 배우로 처음 만났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전혀 불편하거나 그런 게 없는 거죠. 코앞에서 연기를 하는데 해웅으로서 빠져들게 하는 그런 에너지를 주시더라고요. 리드를 잘 해주셔서 저는 더 신명 나게 놀 수 있었던 거죠.”

▲배우 조진웅<I T N>

이어 “그런 걸 느낄 때 너무너무 재밌다”며 연기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전 ‘왜 더 많은 사람이 연기를 안 하지?’라는 생각을 해요. 너무 재밌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한번 깨지기도 하고 피도 흘리고 울고불고하는 거죠. 정말 신나게 놀 수 있는 판이 있으니까 그럴 때 진짜 이거(배우) 하길 잘했다 싶어요.”

‘대외비’의 배경인 부산은 조진웅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부산은 항상 가고 싶은 곳이니까 (촬영할 때) 설렌다”고 했다. 또 1992년이라는 시대상을 보여줄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부산 외 다양한 지역을 방문했다면서 “여수와 거제를 정말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해웅처럼 국회의원을 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조진웅은 “전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정의로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다며 생각을 밝혔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진지하게 저에 대한 고민을 해봤던 것 같아요. 누가 (드라마 ‘시그널’ 속) 이재한처럼 정의롭냐고 하면 항상 아니라고 답했어요. 저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인데 강자한테 약하고 그렇다고요. 근데 ‘대외비’에서는 만약 이런 상황이 온다면 그러지 말자 싶었어요. 내가 손해 보더라도 악에 무릎을 꿇거나 힘에 좌절하지 말자. 그것만 좀 지키자 생각했어요. 영화 속 캐릭터에게 참 많이 배워가는 것 같아요.”

김복두 itn@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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