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소비기한 도입후 식품폐기물 감소 기대
영업자 중심서 소비자 중심 소비기한 표기 변경
서울에 사는 가정주부 A씨는 최근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바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확인하는 것. 그는 “학생 시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은 버리거나 점주 허락하에 챙겨가는 경우가 있었다”며 “소비기한 표기로 버려지는 식품도 줄고, 섭취 가능일을 한 눈에 알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소비기한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A씨와 같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근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인 B사가 자사 고객 10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소비기한 표시가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주요 이유로 식품 폐기를 줄일 수 있어서(51%), 날짜가 지나도 먹어도 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49%) 등을 꼽았다.
특히 소비기한 표시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관련 상품을 더 많이 구매하겠다는 응답자가 77%에 달했다. 이는 소비기한 표시제의 필요성과 취지에 공감한 것으로 분석된다.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개정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올해 1월 1일부터 식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써야한다. 다만 각 기업의 재고, 포장 교체 환경 등을 고려해 올해는 계도기간으로 운영 중이다.
또 낙농·유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우유류(냉장 보관 제품에 한함)는 냉장 환경을 개선한 후 2031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유통기한은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소비기한은 제품에 표시된 조건대로 보관했다면 먹어도 이상이 없는 기간을 말한다.
1985년 처음 도입돼 38년간 이어온 유통기한을 정부가 바꾸겠다고 나선 이유는 뭘까.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음식물을 줄이기 위해서다. 유통기한이 조금 지나도 품질에 문제가 없지만 소비자들은 먹어서는 안될 음식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통상 유통기한은 ‘품질안전한계기간’의 60~70% 시점, 소비기한은 80~90% 시점으로 설정한다. 정확한 유통·소비기한은 제품별 특성에 맞는 항온항습의 조건에서 보관하면서 관능, 이화학적, 미생물학적 및 물리적 지표 등에 대한 실험을 거쳐 설정하게 된다.
식약처가 공개한 소비기한 참고값을 보면 ▲두부 17일→23일 ▲햄 38일→57일 ▲발효유 18일→32일 등으로 기존 유통기한보다 크게 늘어난다.
우리나라 식품 폐기량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연간 548만톤이다. 처리 비용은 1조960억원에 달한다.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소비기한으로 변경 시 가정 내 가공식품 폐기 감소로 연간 8860억원의 편익이 발생한다. 또 산업체는 제품의 반품·폐기 감소로 연간 260억원 사회적 편익이 기대된다. 아울러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 또한 연간 165억원 감소한다.
이미 해외에서 소비기한을 주로 사용하는 점도 이번 도입에 참고 사례가 됐다.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등이 소비기한을 도입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도 소비자가 유통기한을 식품 폐기 시점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유통기한의 정의를 삭제했다. 대신 소비기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비 시장이 영업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유통기한은 오랫동안 영업자가 효율적인 유통, 재고 관리 등을 위해 활용해왔다.
소비자 중심으로 최근 시장 환경이 변함에 따라 소비자들이 좀 더 합리적이고 안전한 식품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소비기한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식약처는 소비자들이 소비기한에 불편함 없이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소비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기한 안착을 위해 날짜표시 확인과 보관온도 철저 준수를 생활화 해야한다”라고 말했다.
김복두 itn@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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