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상상력으로 진실의 상대성과 인간의 위선을 파헤치다!
제목 ‘로메리고 주식회사’는 주인공이 다니는 손해사정법인으로, 영원한 제국을 상징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처럼 업계를 평정하는 의미에서 로마와 아메리카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주인공 이정우가 9년간 사법고시 공부에서 실패를 맛본 후 고향 선배의 추천으로 들어간 이 회사에서 처음 배당받은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화재특종부 손해배상1팀에 배속된 이정우는 첫 임무부터 이기적 사악함과 부조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낀다. 하필 첫 번째로 맡은 보험조사 사건이 금감원이든 어디든 민원을 넣겠다며 욕설과 협박을 일삼는 ‘갑질’ 고객을 대하는 일이다.
이 고객이 당한 자전거 사고를 조사하던 중 이정우는 목격자 한 명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이 목격자가 맞은편 오피스텔을 향해 기마 자세를 취하자 유리창이 깨지면서 사람이 다친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의도적인 테러인지, 우연한 사고인지 확신할 수 없다.
만약 테러라면 초능력인 ‘장풍’을 사용한 것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피해자는 여행사 직원이 아닌 신원을 숨기고 활동해 온 국가정보원 직원으로 밝혀진다.
사고가 난 오피스텔에는 대기업 비서로 일하는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산다. 3년간 사귀었지만, 여자친구는 권태를 느끼는 듯 이정우에게 애정이나 관심을 거의 주지 않는다.
여자친구 집을 드나들다 ‘장풍’을 사용할지도 모르는 목격자와 자주 마주치게 된 주인공은 오피스텔 테러와 공원 자전거 사고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모두 이 목격자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순수문학이지만 작가는 ‘장풍’이라는 판타지 소재를 등장시켜 고전적인 서사 구조를 해체한다. 여기에 이야기가 현실과 초현실을 종횡무진 하다 하나의 출구에서 합쳐지도록 만드는 창의성을 발휘한다.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기이하고 해괴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작가가 풍자한 것이기도 하다. 문학적 관점에서 작가는 이를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몰입시킬 문학적인 은유라고 설명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회사 헤게모니 그룹의 일원이 되기까지 거친 과정을 권력과 암투의 속성 그대로 매우 치밀하게 그려낸다. 도덕과 예의로 포장했지만 각자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인간의 본원적 이기심과 그로 인한 진실의 실종을 지적한다. 소설은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 내놓은 걸작 라쇼몽(羅生門)처럼 ‘실체적 진실’의 상대성을 다룬다.
김복두 itn@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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