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6∼29일 예술의전당 공연… “오페라 과거 머물지 말고 현실 반영해야”
“노르마는 왜 화형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광기'”
“노르마는 굉장히 비비드(vivid)한 캐릭터에요. 노르마를 현재의 여성과 과거의 여성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노르마의 감정에 집중해주세요.”
벨칸토 오페라를 대표하는 ‘노르마’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갈리아 지방의 여사제 노르마의 사랑과 질투, 용서, 복수, 희생 등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남자의 배신에 분노하고, 정결을 요구받고, 결국 화형당하는 노르마의 모습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페인 연출가 알렉스 오예(63)는 이 작품에 부단히 현실을 투영시킨다.
오예가 연출한 ‘노르마’는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시즌 개막작으로 초연됐던 작품으로 다음 달 26∼2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개막을 앞두고 26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오예는 작품에 관해 설명하며 ‘현실’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그는 “과거에 했던 전통을 따르는 오페라에는 관심이 없다. 200년 전 만들어진 오페라를 지금 보면 우스꽝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는 현실에 맞게 각색돼야 한다”며 “내 무대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리스크도 있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를 가져가지 않으면 오페라라는 장르는 과거에 머물게 된다”고 말했다.
연출적인 측면에서 오예는 극적으로 보이는 무대 장면도 사실은 현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 많다고 했다. 3천500개의 십자가를 채운 무대는 실제 수많은 십자가가 세워진 리투아니아의 성당에서 영감을 받았고, 머리 위로 높이 솟은 흰 고깔 의상 역시 사순절 때 스페인에서 아이들이 입는 의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출은 환상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해야 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반영했다”며 “스페인의 가톨릭 문화가 많이 반영됐다. 이런 문화를 아는 관객들은 무대가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과거 여성상인 노르마 캐릭터는 어떻게 현대적으로 바뀌었을까. 노르마의 다양한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충분히 오늘날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오예는 강조했다.
오예는 “전 세계 곳곳에 여전히 노르마가 많다. 노르마의 캐릭터 특성이 현재 여성들과 완벽하게 동일시되지는 않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억압받는 여성들이 있다”며 “노르마가 왜 화형에 처했는지 고민했다. (정결을 지켜야 하는 여사제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화형에 처할 정도로 잘못된 것이었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광기’다. 노르마를 화형에 처하기까지 이야기를 몰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광기 때문”이라며 “세상의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종교가 권력을 잡은 순간을 집중해 연출했다”고 덧붙였다.
“노르마는 여사제이자 엄마이자, 한 사람의 애인으로 역할이 많아요. 노르마가 보여주는 감정도 다양하죠. 사랑도 있고, 증오도 있고, 애증, 시기, 질투 등이 있어요. 여기에 작품의 키워드 광기, 전쟁, 종교, 희생 등을 복합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용구 itn@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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