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프로듀싱’ 아이돌 늘며 사랑 타령 탈피…솔직한 자아 표현
K팝 시장에서 타인과 관계가 아닌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Z세대 가수들의 노래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7일 가요계에 따르면 Z세대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로 꼽히는 이찬혁은 첫 솔로 음반에서 은유적인 죽음을 겪은 후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신곡 ‘내 꿈의 성’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견고하고 거대한 성으로 비유하며 본인만의 음악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이런 욕망을 그는 음악 외적인 퍼포먼스로도 표출하고 있다. 이찬혁은 지난달에 엠넷 음악방송 ‘엠카운트다운’에서 객석을 등지고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SBS의 ‘인기가요’에 출연해서는 무대 위에서 머리를 짧게 밀어버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기행’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의 음악과 더불어 다른 가수들과 차별화된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평도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 자신을 찾자는 메시지는 (여자)아이들의 신보 ‘아이 러브'(I Love)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8년생 전소연이 작사와 작곡을 맡은 타이틀곡 ‘누드'(Nxde)는 제목에서 ‘너’를 의미하는 알파벳 ‘u’ 대신 ‘x’를 사용해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Z세대를 표현해냈다.
걸그룹 르세라핌은 미니 2집의 수록곡 ‘노 셀레셜'(No Celestial)에서 ‘멋대로 던져대는 시끄러운 얘기들, 건질 게 없네 한 귀로 흘려, 소란한 세상 속에 내 목소린 볼륨 업(volume up)’이라는 노랫말로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자신의 색깔을 지키고픈 신세대의 마음을 드러낸다.
10년 전 국내 음원차트 최상위권을 차지했던 아이돌의 노래와 비교하면 곡에서 자아를 강조하는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2012년 최고 흥행 곡 중 하나인 씨스타의 ‘나혼자’나 ‘러빙유'(Loving U), 2NE1의 ‘아이 러브 유'(I Love You) 등은 모두 사랑을 소재로 삼아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설렘과 외로움 등을 묘사했다.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이런 K팝 트렌드의 변화에 대해 “직접 음반을 제작하는 아이돌 그룹이 자신들의 색깔에 맞춰서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본인들만의 음악을 표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나 결혼에 큰 뜻을 두지 않고 자아실현이나 꿈, 내면의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런 흐름 속에서 Z세대 아티스트들 역시 사랑보다는 자기 자신의 솔직하고 다양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특정 소재에 한정된 K팝 음악에 지쳐있던 팬들은 가수들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곡들에 환호하고 있다.
‘아이 러브’는 일주일 동안 67만8천여장이 팔린 데 이어 현재까지도 국내 음원차트 최상위권을 굳게 지키고 있다.
르세라핌의 미니 2집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14위를 기록하며 역대 K팝 걸그룹 역사상 데뷔 후 가장 짧은 시간 만에 차트에 진입했다.
직장인 장미선(24)씨는 “기존의 아이돌 가수의 노래는 대부분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였지만, 요즘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작품이 많아 진부하지도 않고 더 찾아 듣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걸그룹 팬이라고 자처한 서태란(23)씨는 “요즘 노래를 들으면 무의식중에 파워워킹을 하게 된다”며 “듣는 것만으로도 능동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남’이 아닌 ‘나’를 주목하는 K팝계의 트렌드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김도헌 평론가는 “직접 창작하는 아이돌이 있는 한 이런 경향은 당연히 지속될 것”이라며 “그간 K팝이 비판받는 지점 중 하나가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작품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이러한 제작 문화에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재성 기자 unicho114@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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