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환상적인 골이 탄생
지금으로부터 꼭 20년전 오늘, 2002년 5월 16일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역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센스 넘치는 골이 탄생한 날입니다.
2002 월드컵 개막을 보름여 앞둔 이날 저녁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는 한국과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친선경기가 열렸습니다.
일찌감치 23명의 태극전사를 확정지은 우리 대표팀은 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로 이어지는 5월 평가전 시리즈에 돌입했고, 그 첫 상대가 스코틀랜드였던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김병지 골키퍼를 필두로, 수비에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을 배치하고, 미드필더에는 송종국, 이영표, 이을용, 유상철, 공격진은 박지성, 이천수, 황선홍을 선발로 내세웠습니다.
5만여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우리 선수들은 초반부터 스코틀랜드 진영을 휘저었습니다. 첫 골은 전반 14분만에 나왔습니다. 유상철의 롱패스를 받아 이천수가 골키퍼를 제치고 왼발로 밀어넣었습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황선홍 대신에 교체투입된 안정환이 후반 12분 아크 서클에서 터뜨린 오른발 슛으로 2-0으로 앞서갔습니다. 이어 후반 22분에는 역시 교체로 들어간 윤정환이 멋진 중거리슛으로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스코틀랜드가 후반 29분에서야 한골을 만회했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힘겨운 상황이 됐습니다.
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드디어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환상적인 골이 탄생했습니다. 페널티 에리어 왼쪽 바깥에서 이을용이 안정환에게 짧은 패스를 보냈고, 안정환은 살짝 다리를 벌려 볼을 뒤로 흘렸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윤정환이 이 볼을 받아 수비진 사이로 절묘한 스루패스를 넣었습니다. 골문으로 쇄도하던 안정환은 페널티 에리어 안 왼쪽에서 볼을 잡지 않고 그대로 골키퍼의 머리 위를 살짝 넘기는 왼발 칩샷을 쏘았습니다. 볼은 골키퍼의 뻗은 두팔을 지나 시원하게 골문을 갈랐습니다.
골을 넣은 안정환은 아내에게 골을 선물하듯 손가락의 반지에 키스를 했습니다.
뒤에도 눈이 달린 듯 동료에게 볼을 흘린 안정환의 속임 동작과, 달려가는 속도와 위치를 정확히 가늠해서 보낸 윤정환의 원터치 패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안정환의 칩샷까지. 그동안 한국 축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골이었습니다.
대표팀의 두 ‘정환’이 합작해낸 이 골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물론, TV로 지켜본 수백만 축구팬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투지와 용맹함만을 앞세우던 한국 축구가 이제는 기술적으로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골과 상쾌한 승리의 기운을 받아서일까요. 얼마뒤 같은 장소에서 열린 2002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기나긴 눈물과 좌절의 세월을 딛고 월드컵 참가 사상 첫 승리의 염원을 달성했습니다.
조재성 기자 unicho114@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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