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6m, 둘레 6.8m, 추정 나이 500살
일명 ‘우영우 팽나무’ 덕분에 팽나무가 재조명 받고 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에 나오는 팽나무는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로 마을에서 자란 이들의 추억이 한껏 서린 보호수다. 어린 시절 저 나무 타고 안 논 사람이 없고 기쁜 날 저 나무 아래에서 잔치 한번 안 연 사람이 없고, 간절할 때 기도 한 번 안 한 사람이 없을 정도다.
드라마에서 로펌 ‘한바다’는 마을 개발 계획에 맞서려는 소덕동 마을 주민들의 수임 부탁을 거절하려 했으나, 팽나무 곁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에 반해 이를 수락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멋진 나무다. 한바다는 도청을 대변하는 대형 로펌 ‘태산’을 상대로 고전했지만 우영우의 활약으로 승기를 잡는다. 일부의 술수로 막혀 있던 팽나무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이 나무는 경남 창원시 동부마을에 있다. 높이 16m, 둘레 6.8m로 어른 네다섯 사람이 안아야 할 만큼 큰 이 나무의 나이는 500살로 추정된다. 드라마에서처럼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지정 조사에 나선다고 밝히며 더욱 핫해졌다.
하지만 드라마의 인기와 창원시 홍보로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며 동부마을 팽나무는 몸살을 앓고 있다. 나무 주변으로 수십 명의 관광객이 몰려 사진을 찍고 쓰레기를 버리고, 마을 논 옆 길가에 수많은 차가 주차돼 있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누기(漏氣) 있는 땅과 마른 땅의 경계에 주로 사는 팽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1340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 있다.. 자연제방이나 해안 지역에 흔하다. 느티나무처럼 1000여년을 살지는 않지만, 500여년은 예사로 사는 장수종으로, 중남부지방의 마을 어귀나 중심에서 마을나무나 당산나무로 자리잡은 경우가 많다. 창원시 동부마을 외에 다른 팽나무 명소를 찾아봤다.
전남 신안군 도초도는 이름처럼 풀과 나무가 푸르른 섬이다. 이곳 환상의정원에는 수령 70~100년 된 팽나무 700여 그루가 터널을 이룬다. 찬찬히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도초도의 관문인 화포선착장에서 약 3.5km에 이르는 수로 둑에 팽나무가 늘어섰는데, 10리가 좀 못 되지만 ‘팽나무 10리길’로 불린다. 바람이 잔잔한 날엔 월포천 수면에 비친 팽나무가 또 다른 길을 이루고, 저 멀리 야트막한 오봉산까지 한 폭의 산수화가 된다.
이곳에 팽나무 10리길이 조성된 사연이 재미있다. 아름드리로 자라 마을의 당산나무로 대접받는 팽나무는 신안군의 보호수 가운데 80%를 차지한다.
하지만 환상의정원 팽나무는 대부분 물 건너 외지에서 왔다. 충청도와 경상도, 고흥·해남·장흥 등 전남 해안 지역에서 기증받아 옮겨 심었다. 주로 논밭 한가운데나 수로 둑에 있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팽나무들이었다. 멀리 타향에서 이사온 팽나무들은 저마다 출신 지역을 표시한 이름표를 달고 있다.
경북 예천 용궁면 금남리에 있는 팽나무는 수령 500년으로, 천연기념물 400호로 지정돼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로 지정된 팽나무는 이 나무와 고창 수돌리 팽나무 등 두 그루 뿐이다.
금원마을에는 이 나무와 관련된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1939년 일제의 약탈이 극심해지자 마을에서는 공동재산인 토지를 이 나무 앞으로 등기이전 했다. 당시 나무의 이름을 ‘황목근’으로 붙였다. 5월에 황색 꽃을 피운다는 뜻을 따서 황이라는 성을 붙였고, 이름을 목근으로 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바람처럼 나무는 마을의 재산을 잘 지켜냈다. 현재 황목근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이자 당산나무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 자정에 제관과 축관을 선정하여 당제를 올린다.
전북 고창 ‘수동리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94호다. 우리나라 팽나무 중에서 가슴높이 둘레의 굵기가 가장 큰 나무이며, 수형이 아름답고 노거수답지 않게 수세 또한 매우 좋은 편이어서 팽나무를 대표하는 학술적가치가 인정됐다.
전남 함평 향교리에는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숲이 군락을 이룬 숲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줄나무(길가나 도로변에 줄처럼 길게 심어져 가로수 역할을 하는 나무들)는 무안 청천리와 이곳 밖에 없다.
향교와 초등학교 옆에 있는 옛 도로변 1만8274㎡에는 나이가 대략 350살 쯤으로 추정되는 팽나무 10그루, 느티나무 15그루, 개서어나무 52그루, 푸조나무·곰솔·회화나무·개잎갈나무가 각각 1그루씩 자라고 있다.
이 곳에 나무들이 심어진 이유는 ‘풍수’다. 명륜당 남쪽에 있는 수산봉(水山峰)이 화기를 품어 그 재앙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유림의 대표인 이양휴 등이 향교리에서 나무를 캐 이곳에 옮겨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재성 기자 unicho114@it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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